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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의 권력기반이 공공히 다져진 관도대전(官渡大戰)|

modest-i 2017. 3. 15. 19:05

1. 관도대전

 






관도대전만큼 삼국지에서 흥미로운 전투도 드물 것이다.

하북을 제압하고 중원으로 내려온 원소와 중원을 제압하고 그에 맞서 싸운 조조...

 

과거에는 친구였고 동지였지만, 둘 중 한 명은 사라져야 하는 상황이었다.

후세사람들이 당시의 상황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원소가 영토의 크기나 병사의 수, 명성에서는 조조보다 앞서 있었지만, 그 자신의 능력면에서는 조조에게 못미쳤다고 한다.

관도전투를 마지막으로 조조는 적어도 살아 생전에는 그의 세력자체가 흔들리는 위기는 당하지 않았다.


이제 관도대전 전의 양자의 상황을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조조는 중원에서 거병했기에 초기부터 사방이 적들로 둘러싸여 있었어 견제가 심했고

헌제를 옹립한 뒤에는 한층 더했다.


남쪽엔 강동의 손책,

형주(荊州)의 유표,

남양(南陽)의 원술,

완성(宛城)의 장수,

서쪽엔 서량(西)의 마등 ·한수,

동쪽엔 여포와 유비가 있어 조조를 노리고 있었다.


이런 위급한 형세 속에서 조조는 일부 세력을 흡수하는 한편

자신에게 적대시 하는 세력은 철저하게 배제하는데 성공하였다.

 

먼저 원술은 손책의 옥새를 바탕으로 황제를 칭하다 제일먼저 조조,손책,유비,여포에게 협공을 받고 멸망한다.


이어서 서주를 지배하고 있던 삼국지 최고의 무용을 자랑하던 여포는 자신의 어리석음 때문에 조조에게 패해 어이없이 죽고,


유비는 그후 조조에게 공격을 받고 원소에게 의지하러 가고 그의 지지세력은 뿔뿔이 흩어진다.

 




이어서 완성의 장수를 달래서 싸움없이 귀순시키는데 성공한다.


마등은 연합하기로 되어있던 유비가 한싸움에 어이없이 무너지면서 미쳐 손써보지도 못하고 정세를 지켜보게 되었고


유표는 늙어서 더이상 싸움의 뜻이 없었다.


손책은 사냥중에 자객의 습격을 받아 그것이 원인이 되어 어이없이 세상을 뜨게 된다.

 





한편 원소는 조조가 중원에서 여러 세력과 각축을 벌이는 것을 호기로 삼고 먼저 하북을 제압하기로 마음먹고는

오랜 숙적관계였던 공손찬을 공격해서 그를 제거하고 잔존세력을 모두 흡수하여 제일가는 세력을 가지게 되다.


이때 유비에게 동맹요청이 들어오고 이를 수락한후 원소또한 중원을 엿보게 된다.

하지만 원소는 모사 전풍의 권유와 유비의 구원요청에도 불구하고

          신속하게 움직이지 않아서

          조조가 서주를 세력권으로 만드는 것을 방관하게 된다.

 

원소는 장수,유표를 한편으로 만들고자 하지만 실패하고

새롭게 강자로 부상한 손책을 끌어들이지만 손책이 어이없이 죽음으로써 이또한 무산된다.

만일 손책이 이때 죽지않고 건재했다면 관도대전은 전혀 다른 양상이 되었을 것이다.

손책은 원소와 더불어 조조를 칠 계획을 짜고 있었기 때문이다.

손책사후 강동이 새롭게 손권을 맞아 대대적인 내부정비에 들어가면서 조조는 한숨을 덜게 된다.







관도대전당시의 양쪽의 인물들을 보면

 

조조 진영엔 하후돈, 장요, 우금, 조홍, 허저, 서황, 관우 등의 무장과

                 순욱, 순유, 정욱, 곽가, 가후, 유엽 등의 모사가 있었고,


원소 진영엔 안량, 문추, 장합, 고람, 순우경 같은 무장과

                 전풍, 저수, 허유, 곽도, 심배 등의 모사가 있었다.


모사나 무장의 질이나 수를 보더라도 양세력 모두 비슷했었다.


하지만 그 지명도에서는 조조측이 더 알려져 있는데

원소가 공손찬 토벌뒤 큰 싸움이 없던 것에 비해서


조조는 관도대전 바로전까지 치열한 싸움을 했기에

그 이름을 날릴 기회가 조조휘하의 인물에게 더 많았기 때문이지


결코 원소의 부하들이 질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원소측의 인물들이 결점이 크게 보이는 이유에는 그들을 잘 아우르지 못한 원소에게 문제가 있었다.







이제 조조와 원소 둘의 능력을 살펴보자면

 

조조는 결단력이 있어서 작은 기회라도 주어지면 그것을 활용할 줄 알았지만


원소는 그렇지 못했다.


이런 점은 조조의 서주침공시 조조가 비워둔 허도를 공략하지 못한 것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또한 조조는 일단 결정이 나면 끝까지 그것을 추진력있게 밀고 나갔지만


원소는 수시로 생각을 바꾸어서 주먹구구식으로 일을 시행해서

참모들을 혼란시켰는데

이것은 결정적으로 원소가 조조보다 무능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조조는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할줄 알았지만

원소는 아니었다.


원소는 지구전을 주장한 전풍을 옥에 가두고,

저수는 참모자리에서 쫒아버린다.

또한 심배와 허유의 갈등을 조정하지 못하며 중요한 전투중에 심배를 어이없이 뒤로 빼돌려버린다.


방어에 능숙하지 않은 순우경에게 거점인 오소를 지킬 것을 명하고,

허유의 의견 또한 묵살하고 오히려 그를 내침으로써

결과적으로 자신의 무덤을 스스로 파게된다.





마지막으로 가장 눈에 보이는 영토와 병력을 보자면

 

조조는 중원의 예주와 연주의 2주와 서주일부가 세력권이었는데 반해서

원소는 황하이북의 유주, 기주, 병주, 청주의 4개주를 완전히 지배하고 있었다.


당연히 인구수는 원소측이 훨씬 많았고

원소는 공손찬을 멸한 이후 한동안 전투가 없었기에 비축해둔 군수물자 또한 조조보다 많았다.



동원한 군사의 수는 조조가 다른 전선에서 빼올 수 있는 한 최대한 빼와서 모은 병사가 2만정도였던데 비해서

원소는 그 수가 10만이 넘었다고 한다.



조조는 남쪽의 유표, 손권이나 서쪽의 마등, 한수가 밀고 올 것을 대비해서 일부 병력을 남겨야 했지만


원소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이제는 관도대전 자체를 한번 살펴보자.

 

원소의 군사가 조조보다 배이상 많았기에 당연히 조조는 방어에 치중하였고 원소는 공세로 나왔다.


원소는 여양에 진영을 구축하고 싸움에 나서지만

곧이어 벌어진 백마, 연진전투에서 조조의 유인, 기만책에 말려서 안량과 문추를 차례로 잃게된다.


두 맹장을 잃은 원소는 진을 양무로 옮겨 공세를 펴게 되고


이에 맞선 조조는 소수 기마를 이용한 기동전략,  발석차 같은 신무기로 대등한 전투를 이끌어간다.

 





그러나 초봄에 시작된 전투가 가을이 되자 병참에서 여러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양쪽 모두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원소가 오랬동안 식량을 비축한 것에 비하면

조조는 관도대전직전까지 전투를 했기에 군사의 수는 원소가 더 많았지만 조조의 형편이 더 어려웠다..



게다가 조조군이 선전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절대적인 수가 적었기에 사망자와 부상자,탈주병을 제외하면

실제로 싸울 병사의 수가 점점 부족해지고 있었다.


이처럼 상황이 안좋아 지자 조조는 근거지인 허도까지 철수해서

그곳의 병사와 합쳐서 결전을 벌일 생각을 하고는 허도를 지키고 있는 순욱에게 밀서를 보내 뜻을 묻게된다.

 

하지만 순욱은 후퇴하면 민심이 이반되고

여러 지방호족들이 등을 돌릴것이니

후퇴불가라는 뜻을 담은 답신을

허도에서 모을 수 있는 식량과 함께 보내면서

조조를 격려한다.



이사이 원소의 참모들은 전국의 상황이 유리하다는 것을 인지하고는

일부병력을 떼내어서 조조의 근거지인 허도를 급습하자는 전략안을 내놓는다.

하지만 원소는 조조의 함정일지 모른다며 유유부단한 태도를 보인다.

 





양측의 대치속에 시간이 지나서 어느덧 10월이 되고 조조측은 다시금 식량이 바닥을 보인다.

이에 군량을 재촉하는 밀서를 순욱에게 보내지만

밀서는 원소의 참모 허유의 손에 들어오게 된다.


허유는 크게 기뻐하며 밀서를 원소에게 보이며

즉시 조조의 보급로와 그에 따른 총공격를 건의한다.


그러나 원소는 함정을 의심하고

때마침 허유의 집안이 부정을 저지른 것이 알려지면서

원소는 오히려 그를 꾸짖고는 물리친다.

 




이런 원소에게 크게 실망한 허유는 원소를 떠나기로 결심하고 그날 밤 조조에게 투항해 버린다. 

사실상 여기서 관도전투의 향배가 가려졌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한편 허유가 찾아 왔다는 소리를 듣고 조조는 크게 기뻐하며 반긴다.

허유가 밀서를 내놓고 허도 기습안을 원소가 거부한 것을 이야기하자

조조는 깜짝 놀라며 향후 계책을 묻는다.

 

허유는 원소의 군량이 관도근처 오소에 쌓여 있고

대장 순우경의 방비가 부실하니 그곳을 칠 것을 권한다.


이에 조조는 즉각 5,000명의 정병을 뽑아 앞장서서 진격을 하고


이 공격에 원소군은 군사를 나누어 반격에 나서지만


오소와 조조본진 어느 한 곳 공격을 성공못하고 대패를 하여


원소는 800기만 거느린채 간신히 근거지인 업으로 도주한다.

 




이 싸움으로 인하여 모사인 저수, 전풍은 잡혀 죽고

무장인 장합과 고람은 항복하게 되며

순우경이 죽고 7만이 넘는 군사를 잃는 등 크나큰 대패를 당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원소가 직접적으로 쓰러지게 된 창정싸움을 살펴보자.

 

창정전투는 관도전투의 연장선이자

원소가 마지막으로 참전한 전투인데

관도대전에서 승리한 조조는 여세를 몰아

여남에서 재기한 유비를 형주로 몰아내고는

원소군을 멸하기 위해 진군을 시작한다.


이 소식을 들은 원소는 다시 한번 자웅을 겨루기 위해서 4주에 격문을 띄워 그

의 아들들이 이끌고 온 군사와 살아남은 병사를 정비해서 다시 한번 전투에 임하게 된다.

 

하지만 전풍, 저수, 순우경이 죽고

허유, 장합, 고람이 배신함으로써


모사의 수가 현격히 부족하게 되는데

여기서 원소는 남아있는 모사중 가장 뛰어나다 할 수 있는 심배에게

어이없이 침략의 염려가 없는 근거지를 지킬 것을 명하게 된다.


이는 곧 조조의 계략을 간파못하고 패배로 연결된다.



창정에서 만난 양군의 초기접전에서 원소군은 조조군의 기세를 꺽고 대등한 전투를 벌이게 된다.

 



이에 놀란 조조는 계략을 쓰기로 하고는

이전처럼 기습안을 채택해서 기습하는 것처럼 위장한다.


원소는 이에 즉각 대응하고 반격에 나서지만

각지에 매복해 있던 조조군을 사전에 탐지하지 못하고

대배하여 다시 업으로 도망가게 된다.





그후 원소는 비통해하며 숨을 거두게 되며

그의 사후 아들들은 일치단결하여 조조와 싸우지 않고 계승권을 놓고 다투고

모사들 또한 분열됨으로써 어이없이 하북을 조조에게 내주게 된다..




결국 원소는 마지막까지 후계자를 명확히 하지 못함으로서 그 결단력 없음을 다시 한번 드러내고는 말았다.



 



공인중개사 주택관리사 모임 카페에서 펌하고 모디스티가 각색함    2017, 3,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