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칠: 나의 예지력은 / 바로 현장을 철저히 관찰하는 부지런함과 / 연역적 추론에서 나왔다
81p
해군장관이 된 첫날, 나는 책상 뒤 벽에 커다란 북해 지도를 걸어두었다.
당직 장교가 매일 독일 해군의 주요 함선의 위치를 작은 깃발로 표시해두었다.
아침마다 ‘위험은 평화 시에 상존한다.’는 사실을 내게 주입시켰다.
해군장관인 전용선인 ‘마녀’라는 요트를 타고,
모든 해군 기지와 조선소를 돌며 해군 전술과 능력에 대한 세부 사항을 끊임없이 배웠다.
대표를 다루는 기술에서부터 해군의 사기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의 모양, 위치, 상호작용’ 등에 대한 정보를 알아냈다.
마침내 나는 원하는 모든 것을, 원하는 때에, 원하는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마녀’는 그 후 4년 동안 나의 집무실이자 집이 되었다.
내가 어떤 주장을 펼쳐갈 때 근거와 정보가 부족한 경우는 없었다.
나는 이 부분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부지런하고 정력적이었다.
나의 예지력은 바로 현장을 철저히 관찰하는 부지런함과 연역적 추론에서 나왔다.
성실함과 부지런함이 현재 상황을 분명히 이해하고
무엇이 결정적인 요소인지 알게 했기 때문에
나는 다수의 의견에 굴복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다수의 의견이 아니라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내 예지력과 통찰의 비밀이었다.
85p
처칠은 폭풍을 잘 견디는 사람이었다.
영국인들은 거친 기후를 잘 견디는 사과 품종에 윈스턴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모두 그를 불굴의 인간으로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전쟁이 없었다면 인류는 처칠을 기억하지 못했을 것이다.
히틀러 역시 자신과 전쟁이 없었다면 처칠은 유명해질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처칠은 상황이 어려울수록 잘 견디고,
나이가 들수록 더 강해졌다.
그는 끈질긴 사람이었다.
스스로 자신의 끈질김을
“문 닫을 때까지 술 집에 머무는 것이 나의 신조다.”라고 표현했다.
그는 인생을 참으로 소란스럽게 산 사람이다.
포기를 모르는 인간이다.
그렇게 끈질기게 삶에 붙어 있던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불멸의 인간’, 이것보다 그를 더 잘 묘사한 말은 없었을 것이다.
처칠은 사망하는 그 순간 바로 역사로 편입되었다. 아니,
그는 이미 살아서 역사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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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p
전설적인 하키 선수 웨인 그레츠키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는 하키 공이 있는 곳이 아니라 공이 움직일 곳으로 미끄러져 간다.”
그는 정말 공이 어디로 갈지를 미리 알고 있었을까?
혹은 그저 성공한 자의 오만한 코멘트였을까?
전례가 없는 뛰어난 성과를 보면
그가 정말 공이 올 곳을 미리 감지했거나 예감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신의 선물처럼 육감과 예감 혹은 예지력이 그에게 특별히 주어졌는지는 잘 알 수 없지만,
그가 상대편을 주의 깊게 연구했고,
연습 과정을 통해 동료들이 공을 어디로 패스할 것인지를 알고 있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위대함의 가장 중요한 요건은 미래의 경영에 성공하는 것이다.
예지력은 현재나 미래를 마치 지나간 과거처럼 볼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미래를 잘 볼 수 있는 자는 과거를 잘 아는 자다.
선견지명에 이르는 그 신비의 원천은 신의 선물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근면과 노력이라는 주장이 훨씬 설득력이 있다.
예지력이 뛰어난 인물들은 현재를 이해하기 전에 과거를 연구했고,
역사적으로 결정적인 사건들의 본질을 파악했다.
그들은 현재를 바꿀 방법을 강구하기 전에
그들이 처한 현재의 상황과 여기까지 이른 경로를 면밀히 탐구하여 알고 있었다.
미래를 꿰뚫어본다면 그것은 천재적 통찰이라고 부르고 싶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천재의 징표가 아니다.
그러기에는 좀 더 보편적이다.
쉽게 보이지 않는 패턴과 동기,
그럴 수 밖에 없는 필요성,
기회가 전조가 되는 사건과 행동들을 파악하기 위한 힘겨운 탐구의 결과가
바로 예지력의 정체인 것이다.
89p
미래는 잠재적 운무 속에 깊이 둘러싸여 잘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고,
모호하고 혼란스럽다.
예지력은 이런 무질서를 꿰뚫고 새로운 방향으로 인도하는 신호를 찾아내는 것이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정확하게 알게 되면
그 상황을 만들어내 요소들의 작용에 의해 어떤 변화가 생기게 된다는 것도 알게 된다.
웹문서 구본형 8기 한승욱 글에서 펌하고/ 각색함 2017, 3, 3 모디스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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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영웅, 다시 살아나다 - 윈스턴 처칠
나는 세상을 감동시키고 싶었다.
그것이 삶의 단 한 가지 목표였다.
‘나라는 사람, 나의 메시지, 그리고 그 메시지를 표현하는 나’는 삼위일체처럼 서로 떨어질 수 없다.
나는 서사시처럼 살았고,
그래서 나의 업적만큼이나 나의 실수와 약점도 그만큼 크다.
그들은 쩨쩨하고 이기적인 내 모습도 놓치지 않는다.
그렇다. 전쟁으로 얼룩진 나의 삶,
나는 어떤 경우에도 삶에서 물러난 적이 없다.
삶에 대한 뱃심 때문에 사람들은 나를 사자나 불도그로 묘사했다.
내가 나타나면 사람들은 패배하리라는 생각을 버렸다.(77)
미래는 보는 예지력의 소유자들은 인습에 얽매이지 않는다.
오래된 것이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란 걸 알기 때문이다.
동료의 압력이나
다수의 의견에 굴복하지 않는다.
마음이 미리 본 것들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지력 하나만 가지고는 힘을 쓸수 없다.
진실이되 누구도 듣지 않는 카산드라의 예언처럼 비극적인 것이 또 있겠는가!
예지력이 제대로 된 힘으로 작동하려면
미리 본 것을 지켜갈 수 있는 불굴의 용기와 인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포기하는 순간 예지력은 무력해진다.(81)
냉소는 결코 업적을 남길 수 없다
위대함의 가장 중요한 요건은 미래의 경영에 성공하는 것이다.
예지력은 현재나 미래를 마치 지나간 과거처럼 볼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미래를 잘 볼 수 있는 자는 과거를 잘 아는 자다.
선견지명에 이르는 그 신비의 원천은 신의 선물이라 보기보다는
오히려 근면과 노력이라는 주장이 훨씬 설득력이 있다.
예지력이 뛰어난 인물들은 현재를 이해하기 전에 과거를 연구했고,
역사적으로 결정적인 사건들의 본질을 파악했다.
그들은 현재를 바꿀 방법을 강구하기 전에
그들이 처한 현재의 상황과
여기까지 이른 경로를 면밀히 탐구하여 알고 있었다.
미래를 꿰둟어본다면 그것을 천재적 통찰이라고 부르고 싶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천재의 징표가 아니다.
그러기에는 좀 더 보편적이다.
쉽게 보이지 않는 패턴과 동기,
그럴 수밖에 없는 필요성,
기회와 전조가 되는 사건과 행동들을 파악하기 위한
힘겨운 탐구의 결과가 바로 예지력의 정체인 것이다.(88)
필요가 발명의 어머니라면 발명의 아버지는 고집이다.
적당히 단념하고 손쉽게 살 수 있는 곳으로 옮겨가는 것보다
불리한 역경 속에서 살아가겠다는 결심이 진보의 역설적 진리다.
혹독한 추위와 이변 속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문명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
울창한 숲이 말라죽은 상태가 되었을 때 ‘달아난 원시인들’은
자연의 지배를 가장 심하게 받았을 뿐 아니라 자연을 정복하려 하지 않았다.
난관을 뚫고 인간이 된 것은
이미 그 밑에 앉을 나무조차 없어진 그 자리에 버티고 있던 무리들이며,
나무 열매가 익지 않자 짐승을 잡아 고기를 먹을 무리들이며,
햇볕을 쫒아 이동하는 대신 불과 의복을 만든 무리들이며,
거처의 방이 벽을 국축하고 아이들을 훈련시켜
세계의 비합리성에 합리성을 입증한 무리들이었다.(89)
위대한 업적은 구체적으로 사람들의 눈에 드러나기 전에
한 사람의 정신 속에 하나의 생각으로 자리 잡고 있다.
정신은 언제나 먼저 본다.
업적은 정신이 먼저 본 것을 불굴의 의지로 실천할 때 만들어진다.
그러므로 정신이 본 것을 비웃는 냉소는 결코 업적을 남기지 못한다.(90)
구본형 8기 허정화 글에서 펌하고 / 각색함 2017, 3, 3 모디스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