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기스칸 "일을 성사시키려면 세심해야한다 /
칭기스칸 "일을 성사시키려면 세심해야한다".
.어떤수순을 밟고
어떤 단계를 거쳐서
내가 도달해야
될 마지막산,
넘어야할
마지막 고개가 무엇이며,
내가 진짜로 노리고 있는 마지막 타깃이 무어냐를
항상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사람이
진짜 리더인 것이다
♣ 책 제목 : CEO 칭기스칸
혁신도서 독후감
진보초등학교 교사 최성화
♣ 책 제목 : CEO 칭기스칸
♣ 읽은 기간 : 2007.5.10 ∼ 6.20
♣ 마인드의 혁신[줄거리 및 느낀 점]
인류역사상 최고의 명장을 꼽으라면 떠오르는 인물 가운데 반드시 빠지지 않는 이름이 ‘칭기스칸’이다. 1995년 미국 〈워싱턴포스트〉지는 지난 1천년간 인류사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로 칭기스칸을 꼽았다. 서양에서조차 인류역사를 바꾼 위대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는 칭기스칸이다.
이 책은 800년 전에 21C를 살다간, 초원에서 살았던 칭기스칸, 그리고 그와 함께 했던 이들의 이야기가 담긴 책이다. 칭기스칸의 삶은 유라시아의 광활한 초원에서 시작됐다. 그가 속한 부족은 나무도 없는 황무지를 떠돌아 다니는 유목민이었다. 절망조차 허락하지 않는 현실을 그는 해냈다. 인류 역사상 첫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의 출현이었다. 더욱 놀랍게도 제국은 12C 후반부터 14C 중반까지 무려 150년이나 지속됐다.
그들의 성공 비결은 한 마디로 ‘꿈’이다. 미래를 향한 비전을 함께 지닌다면 얼마든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은 알았다. 비전의 공유는 ‘열린 사고를 할 때’가능하다. 비전을 공유한다는 것은 함께 꿈을 꾸고, 함께 꿈을 실현해 나가는 것이다. 어떤 꿈이 나만을 위한 것이라면, 나를 위해 남에게 희생과 봉사와 복종을 요구하는 것이라면, ‘꿈의 공유’는 결코 이룰 수 없다.
내 꿈과 네 꿈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가 꿈을 함께 해야 한다. 그것이 21C적 삶이다. 나와 다른 사람에 대한 열린 사고가 앞서야 비로소 꿈을 공유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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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페이지 분량의 작은 책자 속에, 저자는 유목민들의 역사, 삶의 철학, 정신, 문화, 사회 시스템 등의 성공요인과 칭기스칸의 통치 철학과 전략, 전술을 하나씩 설명하고 있다. 그들이 왜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게 되었으며 어떻게 효과를 발휘하였는가를 설명하고 현대의 우량기업들 중 비슷한 철학과 전략으로 성공을 거둔 기업들의 이야기도 함께 소개한다.
그 동안 유럽 역사관 중심으로 볼 때는 오랑캐 같은 칭기스칸에 대하여 대단한 평가 절하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칭기스칸과 그의 동료들은 유럽과 러시아, 아시아를 포함하여 777만㎢의 땅을 정복하고 통치한 그 힘은 어디서 나왔는가? 그러한 정신적 힘을 바탕으로 현대적 관점으로 CEO로 묘사된 칭기스칸을 재평가한 책으로 흥미롭게 전개하다 보니 다소 허구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갖게 하지만, 현대의 자유경제 환경에서 성공하기 위한 충분한 지침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나는 잠시 내가 지금까지 갖고 있었던 칭기스칸과 유목민들에 대한 이미지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잠시 생각해 보았다. 그 이름들은 나에게 공통된 몇 가지 단어들을 떠올리게 했다. 야만인, 자인함, 잔혹성, 무식함…. 하나같이 다 좋지 않은 이미지들뿐이었다.
그래서 처음 책 제목을 대하면서 유목민에게 21C 경영전략을 배운다니…. 조금은 당혹스럽고 의아하게 생각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난 후, 아니, 책을 한 장 한 장 읽어가면서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들이 얼마나 얇은 지식들과 정보로 인한 생각이었는가를 알았고 그 오해들로 인한 편견이 더 잔인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칭기스칸의 통치 철학과 전략, 전술을 하나씩 알아가게 되면서 많은 인식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었고 유목민들의 역사, 삶의 철학, 정신, 문화, 사회 시스템 등과 거기에서 배워야 할 점들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칭기스칸이 800년 전에 대 제국을 통치했던 전략이 현대의 기업경영 전략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것도 많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으며 경영에 대한 지식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나 스스로 많은 반성을 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던 게 사실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지금 이 시대를 살면서 칭기스칸으로부터 어떤 것들을 배워야 할 것인가, 그리고 그 넓은 영토를 차지하면서도 오랜 기간동안 통치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를 나름대로 생각하면서 읽어 내려갔다.
나는 제일 먼저 그 시대에 스톡옵션을 했다는 것에 놀랐다. CEO는 조직구성원의 힘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점을 그는 그 오래전에 이미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도 스톡옵션이란 말이 낯설지 않게 된 게 그리 오래지 않는데 그 시대에 벌써 스톡옵션이 실행되었다는 점, 오랜 세월동안 지켜왔던 보수파들의 세력에 당당히 맞선 그의 의지력과 추진력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포로를 처형하거나 천대하는 대신 기술자만 따로 추려 무기를 만들게 하고, 용맹한 자는 철저한 용병으로 재교육시켜 활용하는 칸의 전략은 아웃소싱과 다름없다.
몽골군이 유럽을 휩쓸 때 그들은 총력전, 속도전을 창안했다. 유럽 기사의 갑옷무게는 70㎏이었지만 몽골군은 7㎏에 불과했다. 그들은 갑옷 대신 옷 속에 얇은 철사 스프링을 넣고 다녔다. 보르츠(육포)는 전투식량의 古典이었다. 휴대가 간편하고 현지조달도 가능했다. 자연히 이동속도는 빨라졌던 것이다.
12세기 몽고초원은 부족간에 다툼이 끊이지 않던 시기였다. 최초로 몽고의 패자가 되었던 카불칸의 손자로 태어난 테무친은 출생 시부터 주변부족의 경계의 대상이었다. 타타르 부족의 흉계로 아버지 예수게이가 죽은 후 어린 테무친은 여러 번 목숨을 넘나드는 고난 속에서 자랐다.
특유의 포용력과 날카로운 결단력을 지닌 그는 점차 자라면서 아버지의 맹우들과 부족민을 다시 규합했다. 신의와 형제애로 똘똘 뭉친 이들 무리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더 많은 수의 적들과 싸워 이겼다. 1206년, 칭기스칸은 마침내 북몽고의 패자가 되었고, 부족간의 싸움도 막을 내리게 되었다.
1211년 금나라 원정을 시작하여 화친을 맺었고,
1925년 이란, 이라크, 아르메니아, 러시아 지역까지 정복한 후 돌아와서 네 아들들에게 사한국(四汗國)으로 분할 통치하도록 하였다.
그러다 1927년 서하 원정 도중 칭기스칸은 질병으로 사망하였고,
그의 아들들이 뒤를 이어 1934년에 금을 멸망시키고 원나라를 세웠다.
그리고 1935년에 칭기스칸의 손자인 바투가 유럽을 원정하였다.
마르코 폴로가 쓴 『동방견문록』에 따르면, 이들은 제국의 어느 변경에서 일어난 일도 하루 밤낮을 쉬지 않고 500Km를 달려 황제에게 보고되는 ‘쟘’이란 역체(驛遞)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칭기스칸이야말로 최초로 세계경영의 마인드를 가진 인물이었던 것이다.
몽고부족은 글자가 없었기 때문에, 후대에 주변민족들의 역사기록에 의해 우리는 칭기스칸을 약탈자의 모습으로만 알고 있다. 그러나 이 광활한 제국이 오랫동안 유지되었던 것은 무력의 힘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다. 과연 그들의 힘은 무엇이었을까?
『CEO 칭키스칸-유목민에게 배우는 21세기 경영전략』에서 저자는 이렇게 묘사한다.
“그들을 ‘800년 전에 21세기를 살다 간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칭기스칸의 삶은 유라시아의 광활한 초원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선대로부터 이어 내려오던 오랜 내전을 종식하고 몽골 초원을 통일한 다음, 바깥세상으로 달려 나갔다. 칭기스칸 시대에 정복한 땅은 알렉산더 대왕, 나폴레옹, 히틀러가 차지한 땅을 합친 것보다 넓다.”
특히 유럽인들은 몽고군이 보여준 필사적인 결의, 허를 찌르는 기동력, 상대방을 무력화시키는 전술 등에 대해 ‘황색공포(Yellow Peril)’라고 표현하며 아직도 무의식중에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한(韓)민족이 움직일 때마다 세계사의 향방이 결정적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훈족의 이동은 로마를 멸망시켰고, 몽고인들은 세계를 단일경제권으로 만들었다. 이 당시 몽고인들이 통일화폐로 사용한 지폐는 아프리카에서도 발견되었을 정도다.
현대의 문명연구자들은 칭키스칸의 승리를 폐쇄적인 농경문화가 개방적인 유목문화에 패배한 문명사적 사건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많은 미래학자들은 21세기를 또다시 신유목민이 지배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제세핵랑군이 알아야 할 칭기스칸
칭기스칸과 그의 후손들이 만든 역사는 오늘의 우리에게도 많은 점을 배우게 한다.
그들은 전투에 임하기 전 세심하게 정보를 파악했으며,
보급과 무기체계의 단순화로 원거리 원정을 가능케 했으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부대 상호간에는 유기적인 배치를 이루었다.
그리고 정복 후에는 어떤 민족이든 문화와 종교를 인정하였을 뿐 아니라, 스스로도 주변국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또한 칭기스칸은 인종과 종교를 가리지 않고 인재를 등용했다.
이러한 칭기스칸의 전략과 전술은 현대 경영이나 군사학에도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그 중 증산도 도군(道軍)을 위한 부분을 몇 가지만 짚어보기로 하자.
장교자(將驕者)는 패(敗)니 견기이작(見機而作)하라 (道典 8:89)
칭기스칸이 후손에게 남긴 <훈요 30조>를 보면,
15째로 “일을 성사시키려면 세심해야 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8째로 “윗사람이 말하기 전에 입을 열지 말라. 자신의 의견과 다른 말을 들으면 잘 비교하라.”라는 유훈을 남겼다.
칭기스칸은 강한 적이든 약한 적이든 주도면밀하게 탐색하고
누구의 말이든 세심하게 귀 기울였다.
이런 면은 부하들과 후손들에게 그대로 이어져, 대제국을 거느리는 좋은 힘이 되었다. 그러나 정복지에서 가져온 보화에 눈이 먼 후손들은 이런 선조들의 충고를 잊고 말았다.
“내 자손들이 비단옷을 입고 벽돌집에 사는 날, 내 제국은 망할 것이다.
”칭기스칸의 말은 그대로 적중되었다.
천하사를 하는 자는 생각이 멀고 깊어야 하며,
불시의 일에 대비하여야 하며,
경계함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하느니라. (道典 8편 56장)
몽고군이 행군할 때는 아무리 작은 부대라도 항상 정찰병을 사방에 파견하여
복병을 조심하였다.
그들은 높은 곳에 올라가 약 100∼200km 정도를 정찰하였으며
토착민들을 붙잡아 전투하기에 적합한 장소 및 야영지, 양식 등의 사정을 알아왔다.
또 지휘자의 막사는 항상 높은 곳에 잡고 그 주위에 순찰 경비병을 두었다.
몽고군은 ‘낮에는 늙은 늑대의 경계심으로,
밤에는 갈가마귀의 눈으로 지켜보아라.
전투에서는 적을 매처럼 덮쳐라.’라는 말을 충실히 실행하였다.
무릇 주장의 일하는 법은 영웅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힘쓰고 공 있는 자는 상과 녹을 주고 뭇 사람과 한마음으로 뜻을 통하는데 있느니라. (道典 8:60)
초기 칭기스칸의 행로는 정벌이라기 보다는 약탈을 위한 습격의 개념에 가까웠다. 그러다 칭기스칸은 규율을 새로 세워 개인적 약탈을 금지하고, 합리적으로 약탈물이 분배되도록 하였다. 이 덕분에 모든 부대의 구성원들은 자신의 기여도만큼 분배가 온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는 전체구성원을 하나로 묶어주었다.
또한 몽고군 안에서는 평등의 원칙이 지배하였다. 칭기스칸 자신도 ‘소매치기 같은 옷을 입었다’는 등 평생 검소한 생활을 하였고 심지어는 황후도 ‘활을 풀어 옷을 해 입었다’고 할 정도였다. 그러하기에 부하들은 열과 성을 다해 정복전쟁에 임했고 재산과 권력을 탐하지 않았다.
친구를 둬도 사생결단을 같이 할 다정한 놈을 두어야지 (道典 8:49:7)
몽고군에는 ‘태어난 곳은 달라도 죽는 곳은 같다’는 속담이 있다. 이들은 서로 간에 죽음도 가를 수 없는 형제애로 똘똘 뭉쳤다. 특히 칭기스칸은 배반을 가장 싫어하였다. 반면 적이라도 신의 있는 자에게는 파격적인 보상을 주었다. 때문에 칭기스칸은 자신을 위해 죽어줄 벗(누쿠르)들이 80명 가까이 있었다.
몽고군은 전우들이 싸우다 전사하면 반드시 형제와 벗의 시체를 찾아왔다. 때문에 몽고군은 싸우다 죽어도 고향에 돌아갈 수 있다는 믿음에 생명을 걸고 싸웠다.
처세유위귀(處世柔爲貴)요 강강시화기(剛强是禍基)라. (道典 8:97)
몽고군은 강함으로 부드러움을 만들어낼 줄 알았고, 혼란의 역사 속에서 평화를 창출해냈다.
몽고군은 ‘야사’라는 철의 규율을 지키도록 하였다. 그래서‘칭기스칸의 치세 아래 이란과 투르키스탄에 있는 모든 나라들은 어떠한 폭행도 없이 황금쟁반을 머리에 이고 해가 뜨는 땅에서 해가 지는 땅까지 여행할 수 있었다.’고 칭송되었다.
항상 더 많은 수의 적과 싸워왔던 칭기스칸은 적이 강공을 하면, 재빨리 물러났고, 적이 굳게 지키면 반드시 혼란하게 만든 후 공격하였다. 그러나 공격이 시작되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쉴새 없이 밀고 들어갔다.
그리고 칭기스칸은 ‘명분이 있어야 확고하게 지배한다.’는 유훈을 남겼다. 칭기스칸은 힘으로만 대륙을 지배한 것이 아니라, 强과 柔를 시의 적절하게 사용할 줄 알았던 것이다.
본줄기 되는 인원만 일정한 규칙을 정하여 나아갈진대 세계민족이 포섭되리라. (道典 11:126)
칭기스칸과 그 후손들이 대제국을 건설했을 때도 타민족을 제외한 실제 몽고기병은 4∼10만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이 인원으로 1∼2억 정도의 유라시아대륙을 정복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역사가들조차 ‘기적’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 비결은 타민족을 포섭하는 뛰어난 능력이었다. 이들은 백호제, 천호제, 만호제를 두어 피정복지를 하나로 묶어냈다. 軍편성과 행정이 일체인 이들은 10명을 한 단위로 묶어 부대를 만들고, 계속해서 10부대를 한 단위로 묶어가는 특유의 방식은 훈족이나 여진족의 그것과 유사하다.
칭기스칸은 ‘대야사’에서 “백호장은 백호를, 천호장은 천호를 다스릴 수 있다.”고 못 박고 있다. 이 천호장과 만호장들은 일년에 한두 번씩 꼭 칭기스칸의 훈시를 들어야 했다. 이런 조직을 바탕으로 몽고군은 ‘칭기스칸이 손을 한 번 들면 10만, 두 번 들면 20만, 세 번 들면 40만이 일어난다’할 정도로 점령지를 체계적으로 묶어나갔다. 따라서 전쟁을 계속해 나갈수록 피폐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 든든한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특히 백호장이나 천호장 등은 출신에 관계없이 능력에 따라 등용하였으므로, 제국은 새로운 질서 속에 급속도로 안정되어갔다.
한 사람의 꿈은 꿈이지만, 만인이 꿈꾸면 현실!
칭기스칸은 자신이 하늘로부터 ‘해가 뜨는 곳부터 해지는 곳까지 지배하라’는 계시를 받았다고 믿었고 자신의 신념을 끊임없이 확신시켰다. 그리고 그 신념과 확신은 부하들에게도 고스란히 파급되었다.
또한 그는 누구든 능력이 있는 자는 파격적으로 대우하였으며, 이들은 피로 똘똘 뭉쳤다. 이러한 능력은 알렉산더나 나폴레옹, 마오쩌둥이나 최근의 체 게바라 등과 비견해서 볼 수 있다. 이들은 모두 자신들의 꿈과 비전을 모든 병사들이 공유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알렉산더가 이상주의자였고, 나폴레옹이 정치적 수완과 큰 장수를 부리는 능력이 부족했던 반면, 칭기스칸은 철저한 현실주의자였다. 인재를 발탁해서 쓸 줄 알았고, 일단 등용하면 그들에게 모든 신뢰와 권한을 주었다.
몽고군은 모든 병사가 전체 움직임을 볼 줄 알았으며 각기 다른 직능도 두루 해낼 수 있었다. 때문에 아무리 많은 인원이 추가되어도, 조직은 체계가 흐트러지지 않고 오히려 단단해졌다. 특히 ‘천호장’이라 불리던 군사, 행정조직을 바탕으로 내부결속을 다졌기 때문에 칭기스칸은 앉아서도 천리 밖을 원정할 수 있었다.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고향에서 쫓겨났다. 가난하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들쥐를 잡아먹으며 연명했고, 내가 살던 땅에서는 시든 나무마다 비린내만 났다. 나는 배운 게 없어 내 이름도 쓸 줄 몰랐지만, 남의 말에 항상 귀를 기울였다. 그런 내 귀는 나를 현명하게 가르쳤다.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안에 있다. 나 자신을 극복하자 나는 칭기스칸이 됐다. ―본문 중에서》
오늘날의 관점에서 본다면 칭기스칸은 미스터리다. 소수의 유목민 출신이 변방에서 일어나 중원을 제패하고 나아가 아시아와 유럽, 이슬람과 기독교 문명을 접속시키는 엄청난 위업을 달성했다는 사실은 불가해하다. 이 책은 이 비밀을 분석학적 의미로 추적해 들어간다.
저자는 그것을 칭기스칸의 꿈, 그리고 몽골족의 꿈이 통합된 시너지 효과라고 분석한다. 이를테면 ‘꿈이 지닌 파괴력’이다. 칭기스칸의 야만성, 무자비한 침탈을 익히 알아 온 처지에서 본다면 상당히 낭만적인 평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일생을 면밀하게 관찰해 온 저자는 칭기스칸의 역사적 기록 구석구석에서 ‘꿈의 광맥’을 찾아낸다. 저자는 칭기스칸이 적어도 800년 전에 사이버의 세계가 지평선 너머 저쪽에 있다는 것을 감지한 탁월한 능력의 소유자였다고 단언한다. 더 나아가 그는 일단의 기마 병력을 이끌고 이슬람 세계를 관통하고 서진에 서진을 거듭해 유럽 문명까지 통합했다.
이 책은 무자비한 정복자의 말발굽을 추적하기보다는 1200년 지구상에 나타난 위대한 CEO라는 관점에서 그의 성공을 탐색하는 내용이어서 흥미롭다. 성공의 여러 요소 가운데 우선 ‘칭기스칸의 사람들’이 꼽힌다. 그의 주변에는 평생 동지 격인 ‘4준마’,‘4맹견’이 있었다. 이들은 참모로 혹은 정책 아이디어맨으로, 전투의 지휘관으로 활약했다. 침략자로서 특이한 면모는 두 번째다. 그는 부하들의 개인적 약탈을 금지했다. 피정복자를 봐주어서가 아니라 배분의 공평성 때문이었다. 전쟁 후선까지 배려한 방식이다. 저자는 이 대목에서 오늘날 스톡옵션의 그림자를 발견해 낸다. 다음으로 속도전 숭배자의 면모. 당시에 가장 빠른 기동력을 지닌 것은 말이었다. 그것은 바로 정보력이기도 했다. 말의 가축화와 기병대야말로 오늘날의 컴퓨터 설치와 누리꾼에 비유할 수 있다. 기병대는 전투의 신속성에서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각지를 왕래하는 교역상들의 정보를 가장 빨리 입수해 전달하는 역할까지 수행했다. 저자는 내친김에 아웃소싱을 놓고 현대 경영학과 그의 타민족 융화책을 연결 짓는다. 칭기스칸은 타민족의 상층부는 때려 부쉈지만 하층의 기조는 그냥 두어 사회가 그대로 돌아가게 했다. 지배자인 몽골족과 피지배자인 페르시아인 사이에는 차별의 벽이 없었다. 저자는 이 대목에서 거스 히딩크 감독을 등장시킨다. 그리고 그의 성공 요인이 실력 위주로 선수를 선발한 공정성에 있었다는 일반적 분석을 소개한다. 저자는 이렇게 지식과 분석의 지평을 넓혀 칭기스칸의 예 뿐만 아니라 현존 기업까지 넘나들고 있다.
신뢰를 바탕으로 당시 몽골인들은 너커르(평생 동지), 안다(평생 친구)라 하여 태어난 곳, 태어난 날짜는 달라도 죽는 자리는 같이 한다는 철저한 실력 중심의 인간관계를 맺었다. 이러한 수평적, 평등을 중시하여 자신을 칸(왕) 호칭을 사용하지 않고 테무진으로 부르게 하여 계급의식을 제거하였다. 전쟁에서는 전리품 분배를 철저히 능력 위주로 하였으며, 다민족과 다종교를 인정하고 통일된 지폐를 사용하게 하였다. 그들은 유목민의 특성을 살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끝없는 변화를 추구하고 다른 나라와 민족의 장점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 들여 자기 것으로 발전시켰다.
‘CEO’란 단어는 불과 10여 년 전쯤부터 우리에게 친숙한 단어가 되어있는 단어이다. IMF를 거치면서 사람들이 경제에 대한, 경영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면서 특정 사람들이 아닌 일반 대중들이 쓰는 말로 되어 버렸다.
CEO와 칭기스칸, 이 두개의 단어는 최고의 지도자라는 공통의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조화롭지 않는 듯 하고 각기의 단어의 의미가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이 되기 힘들다. 우리의 인식은 그런 고정관념에 빠져있는 것이다.
유목사회는 살기 위해 위가 아니라 옆을 봐야 하는 수평 마인드의 사회였고, 그런 사회에서는 완전개방이 최상의 가치로 통한다. 마치 출신이나 조건에 얽매이지 않고 능력에 따라 무한가능성이 보장되는 현대 사회처럼 말이다. 그리고 칭기스칸은 조직 전체의 전투력과 사기를 높이기 위해 혁신적인 조치를 단행했는데, 전리품을 공동의 몫으로 두고 공(功)에 따라 배분함으로써 현대의 우량기업들이 시행하고 있는 스톡옵션 등의 이익분배제도와 같은 효과를 볼 수 있었다.
이 외에도 저자는 칭기스칸이 성공할 수 있었던 원인으로 사람을 보는 눈, 넓은 포용력, 인간적인 매력, 정보 마인드, 스피드 등을 꼽는다. 격변하는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진지한 성찰이 돋보이는 책이다.
잔혹하고 야만적인 징기스칸 = CEO ?
그야말로 ‘영웅의 시대’다. IMF이후 최대의 경제난국, 아니, 어쩌면 당시보다 더욱 어려운 경제를 헤쳐 나가기 위한 지혜를 옛 영웅들의 발자취에서 찾으려 하는 것인지 동서고금을 통틀어 추앙받는 영웅들을 현대적인 시각에서 재조명 하는 각종서적들이 서점의 목 좋은 자리를 독차지하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최근 사회적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대장금’ 을 필두로 옛 선각자들이 브라운관을 통해 안방을 넘나든다. ‘한명의 영웅이 역사를 이끌던 시대는 지났다’고 하면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행적을 따라 오늘을 살아가는 안목을 키우려 노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체 어떤 점이 옛 영웅들을 오늘날 다시 살아나게 하고 있는가?
그들이 살아 숨쉬던 그 옛날에 통용되던 가치에 의해 붙여졌던 ‘영웅’이란 호칭을 오늘날 그 당시와 똑같은 가치를 강조하며 부른다면 그는 이미 더 이상 영웅이 아니다. ‘잔혹하며 야만적이었던 광대한 대제국의 건설자’ 정도로만 알려졌던 칭기스칸에게 오늘날 기업경영의 최고 통수권자를 뜻하는 Chief Executive Officer(CEO) 란 호칭을 붙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칭기스칸은 어떤 힘으로 단지 몇 백만의 인구로 어떻게 그처럼 광대한 지역을 오랫동안 정복하고 통치했는가?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단지 그 당시 그가 어떻게 그러한 놀라운 업적을 일궈 냈는지 자체가 아니라, 당시 그가 창조해내고 적용했던 여러 전투․정복․통치 메커니즘이 오늘날 현대 사회에 던지는 의미이다. 몽골인들의 늑대기질, 재난에 가까우리만큼 혹독했던 강(가뭄), 쪼드(추위)에 ‘피눈물’을 흘리면서도 자유롭고 열린 사고에서 비롯되는 ‘신바람’으로 그러한 재난들을 대처해 냈다는 사실이 그들의 강인한 유목민 근성을 잘 나타내준다.
칭기스칸은 800여년 전에 벌써 ‘제도피로’ 라는 용어로 대변될 수 있는, 제도사회․정착사회의 문제점을 내다보는 혜안을 지녔던 것이다. ‘고인 물은 언젠가 썩는다’는 진부한 옛 속담을 굳이 강조하지 않더라도, 이전의 정착문명국들을 폭풍과 같은 기세로 정복하고 유연하고 융통성 있는 유목 이동문명의 씨앗을 전 세계에 뿌린 그의 행적은 현대 사회를 관통하는 커다란 코드인 ‘인터네티카’, 즉, 빠른 정보 이동의 흐름을 타고 스피디한 인터넷 망을 항해하는 현대 사회의 흐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를테면 현재 우리의 한류바람은 고무적인 현상이고 청신호임에 분명하지만, 종착점이 아닌 출발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한류 대체 문화가 나타나기 전 보다 신선하고 능동적인 구상으로 일시적인 붐이 아닌 생활 속에 스며들어 정착할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칭기스칸이 만들어 낸, 당시의 거대한 몽골 제국 건국을 가능케 한 제도 개혁 내용을 보고 있노라면 실로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다. 현대사회, 특히 기업 경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내용들과 실제로 오늘날의 기업 경영에 있어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각종 핵심 제도들이 빠짐없이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절대적·우월적 가치에서 벗어난 상대적이고 유연한 사고방식이야 말로 유목문화의 핵심 키워드이며 이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핵심가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인간이 항구적으로 지녀야 할 근원적이고 절대적으로 변할 수 없는 -예를 들어 생명에 대한 가치 존중- 것들에 대한 변화가 아니라 그러한 절대적·항구적·보편적 가치에 대해서는 보편적 진리성을 부여하고 나머지 일상적·표피적 문화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변화를 수용하고 잘못된 점에 대해서는 항상 개선과 보완을 할 수 있는 유연한 사고방식이 요구 되는 것이다.
항상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재고찰 함으로써 상호 이해를 높일 수 있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서로의 차이, 즉 다름에 대해서 보다 정확한 인식이 이루어질 것이다. 이러한 ‘차이’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야 말로 지구적 통합의 선행 조건이 될 것이며, 상대주의에 입각한 유연하고 열린 사고방식이야 말로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주요한 덕목이 될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무선통신, 인터넷 등을 이용하여 무한한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정보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런 오늘날의 정보화 혁명은 농업혁명, 산업혁명을 잇는 제3의 혁명으로 일컬어지고 있으며 인류의 삶을 지금까지와는 다른 세계로 인도하고 있다.
컴퓨터 기술, 반도체 기술, 무선통신 기술 등 과학 기술의 발전이 정보 전달에 예전에는 상상조차 못하던 초고속 속도를 붙여 주었으며, 사이버 공간과 같은 인류가 처음 경험하는 새로운 세계를 열어 주고 있다.
현대의 초고속 정보 교류 현상들을 과학 기술과 속도를 숭상하던 칭기스칸의 제국은 이미 13세기에 가지고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말이 달리는 네트워크 망 이었던 `역참제`다.
칭기스칸 제국의 네트워크 망에서는 말이 정보를 가지고 달렸고 21세기의 인터넷 네트워크 망에서는 전자들이 컴퓨터와 컴퓨터 사이를 이동해 다닌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러한 말이 달리던 네트워크 망은 광활한 유라시아의 거대한 유목제국을 하나의 네트워크 망으로 연결하여 대제국의 정보와 물류의 신속한 전달은 물론 군대의 이동에도 안전과 속도를 보장하였다.
칭기스칸의 제국은 새로운 정복지가 생겨날 때 몇 킬로미터마다 역과 파발마를 두고 사람의 몸에 피가 온 몸을 흐르듯 정보들이 역에서 역으로 연결하여 광활한 대지를 하나로 묶을 수 있었다.
칭기스칸 제국의 광활한 대지는 고려에서부터 헝가리까지 모든 곳이 연결되어 있었으며 정보의 전달자는 아무 역이든 가장 빨리 닿을 수 있는 역을 선택하여 한 구간만 전속도로 달리면 되었다.
정보의 전달은 정보가 출발 하는 곳과 최종 수신자만 고정 되어 그것이 전달되는 코스는 고정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만약 어떤 구간이 자연 재해나 전쟁으로 막혀 있다면 그 곳을 우회하는 최단의 경로를 따라 유연하게 정보가 이동 되었다.
현재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뛰어난 정보 전달 체계와 군사 과학 기술을 가졌던 칭기스칸의 제국도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칭기스칸이 처음 초원에서 몸을 일으킬 당시 몽골은 부족 간의 골육상쟁으로 사회는 갈갈이 분열 되어 있었으며, 과학 기술도 전무한 상태였다.
그러나 칭기스칸 제국의 지도자와 사회의 구성원들은 경쟁력이 있는 나라와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 사회의 통합과 과학 기술의 발전이 얼마나 절실한지 잘 인식하고 있었으며, 또한 필요한 과학 기술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사람들을 사회적으로 우대하였고 이를 통해 대제국을 만들고 경영해 나갔다.
지금 우리는 선진국으로 가느냐? 아니면 일본과 중국 사이에 끼어서 이대로 주저앉느냐? 하는 혼란 속에 빠져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기회의 갈림길에 서있다.
그리고 우리 사회 구성원 어느 누구도 현 상황을 위기가 아니라 기회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데 이견을 가진 사람은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와 국가가 과학자, 기술자를 배려하고 이 기회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인정한다면, 또한 우리의 능력있는 젊은이들이 과학 기술을 나의 비전이라고 생각하고 선택하여 우리 대한민국의 과학 기술 능력을 세계를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수준으로 만든다면, 우리 대한민국은 지금의 갈림길에서 선진국으로 나아갈 수 있으며, 작지만 강한 나라로 세계를 이끌어 갈 수 있다고 확신한다.
우리는 막연하게 칭기스칸의 대제국을 생각하면 야만의 군대를 가진 무자비한 약탈을 일삼았던 제국쯤으로 생각을 한다.
그러나 한 번 다르게 생각해보자. 세계 역사상 가장 큰 제국이 야만의 군대만으로 건설되고 또 경영이 가능했을까?
아니다, 그 제국을 이루고 경영하는 중심에는 과학과 기술의 힘이 있었고, 그 힘은 과학자와 기술자를 귀하게 대하는 정책으로 시작되었고 완성되었던 것이다.
몽골 제국은 제국에 복속과 우호 선린을 약속한 나라는 기존의 왕을 비롯해 그 나라 고유의 질서와 문화 그리고 종교까지도 인정하였다.
그러나 제국에 맞서는 나라는 철저하게 공격하여 파괴하였으며 전쟁 후에는 마차 바퀴보다 큰 남자는 모두 처단하여 철저한 대가를 치르게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생사의 갈림길에서도 예외가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과학자, 기술자였던 것이다.
칼을 잘 만들 수 있는 장인, 폭탄제조 기술자, 새로운 장비를 디자인 할 수 있는 과학자, 도자기 장인 등등, 하물며 글을 잘 쓰는 기술자까지도 출신 지역과 신분을 가리지 않고 제국의 일원으로 받아 들여 제국의 허리를 튼튼하게 만들고, 이렇게 쌓인 기술의 힘이 무적의 군대를 만들고, 대제국을 건설 할 수 있게 하였던 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과학과 기술로 이루어졌던 몽골 대제국은 왜 몰락의 길을 가야 했을까?
이 또한 과학과 기술 개발에 뒤처진 것 때문이었다. 몽골 대제국이 내부의 분란으로 과학과 기술의 발전에 잠시 주춤하는 사이 서구에서는 조총이라는 새로운 무기가 개발되었고, 이 조총으로 무장한 러시아 군대에 무적의 몽골군이 패하면서 대제국이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으니, 이렇게 과학과 기술이 나라의 운명도 좌우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젊은 인재들이 과학과 기술의 길로 들어서는 것을 꺼려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앞날을 걱정하게 되는 것이 나만의 기우로 끝났으면 좋겠다.
♣ 혁신된 사례
나 자신 교사이면서 나 자신부터 먼저 혁신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모든 면에서 학생들에게 모범을 보여 본보기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성공 비결은 ‘꿈’이라는 것과 미래를 향한 비전을 함께 지닌다면 얼마든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비전의 공유는 ‘열린 사고를 할 때’가능하고 비전을 공유한다는 것은 함께 꿈을 꾸고, 함께 꿈을 실현해 나가는 것이며 어떤 꿈이 나만을 위한 것이라면, 나를 위해 남에게 희생과 봉사와 복종을 요구하는 것이라면, ‘꿈의 공유’는 결코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내 꿈과 네 꿈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가 꿈을 함께 해야 한다. 그것이 21C적 삶이다. 나와 다른 사람에 대한 열린 사고가 앞서야 비로소 꿈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실천해야겠다.
스톡옵션을 하는데 게으르지 말아야겠다. 조직구성원의 힘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점을 기억해야겠다.
모든 일을 할 때 총력을 기울여 하도록 하고 가능한 한 빨리 일을 처리하도록 해야겠다(그렇다고 일을 졸속으로 처리한다는 뜻은 물론 아니다).
포용력과 날카로운 결단력을 지니도록 노력해야겠다. 신의와 형제애를 중시하고 나대로의 통치철학과 전략, 전술을 가져야겠다.
모든 일에 앞서 세심하게 정보를 파악하고 보다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하며 용기를 갖고 유기적으로 일을 처리해야겠다. 내 주위의 앞선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임과 동시에 뛰어난 제자를 발굴해서 기르도록 노력해야겠다.
“일을 성사시키려면 세심해야 한다.”라는 말과 “윗사람이 말하기 전에 입을 열지 말라. 자신의 의견과 다른 말을 들으면 잘 비교하라.”라는 말을 명심해야겠다.
강한 상대이든 약한 상대이든 주도면밀하게 탐색하고 누구의 말이든 세심하게 귀 기울여야겠다.
또한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검소하고 절약하며 생활해야겠다.
천하사를 하는 자는 생각이 멀고 깊어야 하며, 불시의 일에 대비하여야 하며, 경계함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함을 명심하고 실천해야겠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항상 신중을 기해서 처리해야겠다.
항상 새로운 정보 획득에 노력해야겠으며 모든 일을 적극적으로 처리해야겠다.
공사를 명백히 구분하고 信賞必罰의 정신을 계승해야겠으며 모든 일을 합리적으로 공평하게 처리해야겠다.
친구간 신의를 지키고 배신하지 말아야겠으며 외유내강에 힘쓰고 나름대로의 확고한 인생관, 가치관, 직업관을 가져야겠다.
일 처리엔 완급을 가려야겠으며 한 번 결심한 일은 적극적으로 최선을 다해 추진해야겠다.
명분을 중요시하고 强과 柔를 시의 적절하게 사용해야겠다. 또한 다른 사람을 설득할 줄 아는 능력을 신장시켜야겠고 관리자가 되었을 때엔 능력 우선으로 인재를 쓰도록 해야겠다. 그리고 자신들의 꿈과 비전을 모든 사람들이 공유하도록 하며 모든 부하 직원이 전체 움직임을 볼 줄 알고 각기 다른 직능도 두루 해낼 수 있는 멀티 플레이어로 양성해야겠다.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말고 가난하다고 말하지 말며 남의 말에 항상 귀를 기울이고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안에 있으니 나 자신을 극복하도록 노력해야한다는 그 유명한 칭기스칸의 말을 항상 명심해야겠다.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안목, 혜안을 지니도록 하고 사리사욕을 버려야겠으며 공평무사한 일처리를 해야겠다. 차별의 벽을 허물어야겠으며 실력(능력) 위주의 선발방식(공정성)을 도입해야겠다.
신뢰를 바탕으로 철저한 실력 중심의 인간관계를 맺도록 하며 수평적, 평등을 중시하여 권위의식을 제거해야겠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다양한 사고를 존중하며 끝없는 변화를 추구하고 다른 사람의 장점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 들여 나의 것으로 발전시켜야겠다.
완전개방이 최상의 가치로 통한다는 것을 명심하고 출신이나 조건에 얽매이지 않고 능력에 따라 무한가능성이 보장되는 직장문화를 구현하는데 앞장서야겠다.
사람을 보는 눈, 넓은 포용력, 인간적인 매력, 정보 마인드, 스피드 등을 가지도록 노력해야겠다.
‘고인 물은 언젠가 썩는다’는 말을 항상 명심하고 현대 사회를 관통하는 커다란 코드인 ‘인터네티카’, 즉, 빠른 정보 이동의 흐름을 타고 스피디한 인터넷 망을 항해하는 능력을 소유하도록 해야겠다.
절대적·우월적 가치에서 벗어나 상대적이고 유연한 사고방식을 가지도록 노력해야겠으며 절대적·항구적·보편적 가치에 대해서는 보편적 진리성을 부여하고 나머지 일상적·표피적 문화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변화를 수용하고 잘못된 점에 대해서는 항상 개선과 보완을 할 수 있는 유연한 사고방식을 갖도록 해야겠다.
항상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재고찰 함으로써 상대방에 유연하고 열린 사고방식을 견지해야겠다.
급변하는 정보화시대에 적응하고 자기 계발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겠다. 아울러 자라나는 2세들에게 과학기술교육을 철저히 시키도록 노력해야겠다.
경쟁력이 있는 나라와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 사회의 통합과 과학 기술의 발전이 얼마나 절실한지 잘 인식하고 필요한 과학 기술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사람들을 사회적으로 우대하는 풍토 조성에 앞장서야겠으며 이를 통해 선진한국을 만들어 나가도록 하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를 해야겠다. 그렇게 하기 위해 학생들에게 과학자와 기술자를 귀하게 여기는 마음가짐을 갖도록 지도해야겠다.
항상 자기발전을 위한 노력을 계속함과 동시에 과학기술만이 살길이며 나라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것과 현실안주는 세계화에 역류하고 뒤쳐지는 길이라는 것을 꼭 명심해야겠다.
e9973015님의 블로그에서 펌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