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현세주의, 인생주의, 허무주의 이를 아우르는 실용주의 / 철학자 탁석산
한국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탁석산 | 창비
우리는 무엇으로 살고 있을까? 2000년 <한국의 정체성>으로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믿음을 뒤집는 도발적인 문제 제기를 했던 철학자 탁석산이 ‘한국 다시 보기’의 대상을 우리 주변의 일상과 문화의 차원으로 넓혔다. 그가 바라본 한국인은 현세주의·인생주의·허무주의라는 세가지 속성을 갖고 있다. 보통 부정적인 요소로 꼽히는 현세주의와 인생주의, 허무주의는 그를 만나면서 오늘을 사는 한국인을 절묘하게 표현하는 단어로 탈바꿈한다.
현세주의는 이번 생에 모든 것을 이뤄내야 한다는 조급증으로 ‘빨리빨리’ 증후군을 낳았다.
그 덕에 6·25 전후 잿더미에서 압축성장이 가능했다.
인도처럼 내세를 중요시하는 국민이라면 현세를 내세의 징검다리로 여기고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노력하지 않으므로 기록적인 경제성장이 힘들다.
인생주의는 제도보다는 개인의 감정을, 사회적 성공보다는 삶의 쾌락을 중시한다. ‘어차피 한 번뿐인 인생인데 즐기자’며 사회적 성공보다 삶의 쾌락을 중시한다. 저자는 감각적 즐거움을 택하는 한국인의 방식이 제도에 길들여지지 않는 건강한 야성성과 역동성으로 발현된다고 본다.
허무주의는 저자가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요소다.
가수 김국환의 노래처럼 “산다는 게 좋은 거지, 수지맞는 장사잖소,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은 건졌잖소” 하는 긍정적인 마인드로 어려운 시기를 견디며 살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인생이 허무하니 대충 살자는 서양식 니힐리즘이 아니다.
생이 힘들고 고단할 때 쉬어가는 곳이 한국의 허무주의라는 것이다.
여기에 실용주의가 얹혀진다. 한국인의 현세주의와 인생주의, 허무주의를 아우르는 것이 실용주의다.
저자가 말하는 실용주의는 미국의 프래그머티즘처럼 진리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이 아니다.
좋고 나쁨의 가치를 염두에 둔 개념이다.
저자는 현세에서 삶의 행복을 추구하는 실용주의가 지난 100년간
해방, 전쟁, 분단, 독재라는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수많은 테스트를 거치며 유연성과 적응력을 높여왔다고 말한다.
그래서 오늘날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동력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책과 삶]100년 지켜온 실용주의가 한국 위기돌파 동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