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탁석산: 한국인의 허무주의는 건강해 절망보단 삶 견디는 방어수단
"한국인의 허무주의는 건강해 절망보단 삶 견디는 방어수단"
현세주의, 인생주의, 허무주의.
한국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철학자 탁석산(50ㆍ사진)씨의 답이다.
개항 후 한국의 100년을 지배해 온, 탁씨가 한국인의 '생활철학'으로 지목한 세 가지다.
이 질문을 제목으로 딴 그의 새 책 <한국인은 무엇으로 사는가>(창비 발행)가 출간됐다. '
한국적'이라는 타이틀의 권위를 허물어뜨렸던 전작 <한국인의 정체성>(2000)처럼 이 책도 단정적이고 도발적이다.
"한국이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조선의 전통과 완전히 단절했기 때문입니다.
요즘 지식인들 사이에서 조선의 선비에 대한 향수가 이는데, 조
선의 패러다임인 주자학과 현대 한국인 패러다임 사이에는 어떤 연결고리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는 서양의 철학을 무분별하게 베끼는 것 못지않게,
고유의 것에 집착하는 것도 옳지 않은 것이라고 한다.
"한국은 이미 서양과 조선을 뛰어넘고 새로운 시기를 100년 이상 살았다"며 "
지식인 사회가 조선이라는 벽에 걸려 넘어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정치, 종교, 철학이 일치된 조선 주자학과 결별한 뒤에 '개인'의 공간이 탄생했고,
그 공간에 깃든 한국인의 철학과 정신이 현세주의,
인생주의,
허무주의라는 것이다.
"종파를 초월한 기복신앙이 현세주의의 특성을 잘 보여줍니다.
또 '어차피 한 번뿐인 인생, 즐기자'라는 태도는 인생주의를 보여주죠. 적
극적으로 감각적인 즐거움을 원하는 것, 그것이 한국인 특유의 역동성과 야성성을 낳았습니다."
여
기까지는 그다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이 책에서 주목할 부분은 허무주의를 한국인의 철학으로 내세운 것, 그
리고 그것을 긍정하는 그의 논지다.
"한국인의 허무주의는 서양의 니힐리즘과 다릅니다.
'인생 뭐 있나. 다 그런 거지'하는 태도가 절망으로 연결되는 게 아니라,
어려운 시간을 견디는 방어수단 혹은 '보험'으로 작용합니다.
'지치고 힘들어 어쩔 수 없다'는 마음이 결국 '어쩌겠냐, 열심히 살아야지'로 이어져요.
이게 현대 한국인의 철학입니다. 건강한 허무주의죠."
유상호 기자 sh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