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제력 · 리더십

아문센 탐험대가 하루 6시간씩 24~32km를 이동 /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

modest-i 2020. 12. 3. 15:12

아문센: 상한의(옛천문 관측 기계) 탐험팀 5명 중 4명이 사용,  각자 의견을 물어봄

 

스콧: 상한의 보다 신형 기구를 씀, 혼자만이 사용 가능, 측량에 시간 많이 걸림

 

 

 

 

 

 

아문셴: 북극점 도달후 3일을 더 있으며, 팀원들과 상한의로서 북극점을 재확인함

 

 

 

 

 

 

아문센: 항해중 다른 사람 이야기를 들음

          언로를 열어줌

 

          단, 권위에 도전은 냉정히 차단함

 

 

스콕: 상의하달 명령식으로 사기저하, 언로막힘

 

 

 

 

 

모디스티 의견: 전문가들에게는 언로를 열어줘야 좋은 아이디어를 모을 수 있고, 사기도 진작됨

 

 

                    다른 자료를 보고 첨삭한 것입니다

 

 

 

 

 

 

5명의 노르웨이 탐험대가 55명의 영국 탐험대를 앞지른 이유

최초의 남극점 정복기에는 흥미로운 일화가 숨어 있다. 노르웨이의 아문센 탐험대와 영국의 스콧 탐험대가 벌인 한판의 자존심 대결이 그것이다. 때는 1911년, 수백 년 간 외세의 지배를 받다 1905년에야 독립을 이룬 노르웨이는 그다지 주목 받던 나라가 아니었다. 반면 영국은 세계 최강국 중 하나였다. 나라의 규모는 탐험대의 규모에도 그대로 나타났다. 아문센의 탐험대는 5명으로 구성되었고, 스콧의 탐험대는 55명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노르웨이의 승리였다. 남극점 도달만을 목표로 하여 그에 맞는 가장 효율적인 팀을 구성한 아문센 탐험대는 빠른 속도로 남극점에 도달하고 안전하게 복귀한 반면, 남극대륙의 지리적 탐사에까지 포부를 가졌던 스콧 탐험대는 최초 남극점 도달이라는 타이틀을 뺐긴 것은 물론, 선발대 전원이 사망하는 비보도 감당해야 했다. 물론 스콧 탐험대가 가진 탐험정신과 원대한 포부는 오랫동안 기려져야 할 것이지만, 남극이라는 악조건 속에서는 남극점 도달로 목표를 단순화하고 그 달성을 위해 모든 초점을 맞추었던 아문센의 탐험대가 승리할 수밖에 없었다.

[출처] 작지만 강한 나라를 만든 사람들|작성자 블루칩

 

편집: 모디스티 20.12.03